ChatGPT와 제2의 러다이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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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기계 파괴 운동’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국은 이전까지 숙련된 노동자들이 공장에 모여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을 통해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비롯한 기계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수공업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방직기가 등장하자, 숙련된 직조공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왜냐하면 방직기를 돌리는 것은 비숙련자들도 조금만 방법을 배우면 되는 것이어서, 비싼 돈을 주고 숙련된 직조공들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공업은 점차 무너졌으며, 소규모 자본가가 대규모의 기계와 노동자를 이용해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기계공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급격한 변화 속에서 부의 재분배는 일어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져갔다. 결국 사람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밤에 몰래 망치로 기계를 고장내거나 공장을 불태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계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었으며, 이러한 러다이트 운동은 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한 근시안적인 반응으로 후대에 평가받고 있다.

과연 그 때는 지금의 우리와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으며, 어떤 미래가 우리 앞에 있을까?

ChatGPT

ChatGPT는 2022년 말 OpenAI에서 출시한 대화형 GPT 모델이다. GPT모델 자체는 몇 년 더 이전에 나왔지만, 학습 데이터와 모델 사이즈를 하염없이 키워서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참 물건이다.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응답을 사람처럼 할 뿐만 아니라, 작곡, 작사, 번역, 심지어 코드까지 작성하는 능력이 있다. 머신러닝 엔지니어로서 예전에는 이런 multi-task 가 가능한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양의 text를 이용하는 프리트레이닝 방식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절묘하게 결합되여 이런 무시무시한 것이, 그것도 이렇게 금새 나와버렸다.

심지어, OpenAI에서는 ChatGPT에 대한 API도 상용화해버렸는데, 이를 이용한 수많은 플러그인들이 등장했다. 휴대폰에서, 카카오톡에서, 크롬에서 언제든 ChatGPT의 성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득 예전에 AI에게 대체되지 않을 직업 리스트 같은 것을 봤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화가, 작가, 작곡가 등이 살아남고 회계사, 변호사 등과 같은 직업들이 오히려 대체될 거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StableDiffusion이 등장한 뒤 키워드 입력만으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어졌고, ChatGPT는 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인간 수준으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지식’에 관한 부분에서 인공지능 모델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존재하는 지식을 이용해 추론하여 명확한 답을 내야하는 것이 ‘아직은’ 확률 모델들에게 어렵기 때문이다. GPT는 말그대로 ‘그럴 듯한 말’을 지어내는 모델이다. 내부적으로 지식 체계가 있어 논리적 연산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능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변호사, 회계사 같은 직업들이 아직은 대체되기 어려워 보인다. (예전이었으면 확률 모델인 이상 절대 대체되지 않을거라고 말했겠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예단할 수 없다.)

새로운 풍경

나는 광범위한 직업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필연적으로 잃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가, 기자, 고객 응대 직원, 일러스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가릴 것 없이 이 실직사태는 가속화될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기껏해야 방직기였다. 당시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이 대체할 수 있는 분야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차원이 다르다.

2023년 현재를 기준으로, 물리적 한계가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특정 직업 내에서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반드시 더 값싼 ‘프롬프트 작성자’에게 대체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일반적 사실을 전달하는 수준의 ‘평범한’ 기자라면, 그냥 사건들을 나열하고 기사를 쓰라고 ChatGPT에게 명령하는, 나보다 연봉을 훨씬 적게 줘도 되는, ‘프롬프트 작성자’에게 대체될 것이다. 이는 방직기가 등장하며 평범한 숙련공들이 방직기를 돌릴 줄 아는 비숙련공들에게 대체된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대체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 AI 모델과 방직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학습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기자여도, 내가 사건을 서술해나가는 방식과 문체 모두 AI 모델에게는 금방 학습될 수 있다. 언제까지나 ‘뛰어날’ 수는 없는 것이고, 계속해서 더욱 더 ‘뛰어나’지는 것 역시 인간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1. 대체된 실직자들을 중심으로 제 2의 러다이트 운동이 발생한다. 이는 시민단체의 시위부터, 주요 기업 데이터 해킹, 그리고 데이터 센터의 물리적인 테러 등을 포함할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을 역사로 배운 우리는 이성으로 알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근시안적 반응’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누가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것에 웃으면서 반응할 수 있을까.

  2. 자신의 데이터가 함부로 사용되지 않을 권리가 성문화될 것이다. 최근 OpenAI를 비롯한 기업들이 AI모델 상용화에 따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스코드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몰래 인터넷에 있는 작가들, 화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가져다가 모델 학습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데이터에 성문화된 주권을 갖는 시대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5년 뒤 이 글을 다시 보고는 ‘에이 별 것도 아닌 거에 쫄았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10년 전 AI는 어땠을까? 2014년 인공지능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나는 0~9 손글씨 숫자를 인식하는 모델을 보고 반해 컴퓨터과학을 복수전공하였고, 지금은 머신러닝 엔지니어로서 일까지 하고 있다. 그 때, 10년 뒤엔 ChatGPT 같은 거대한 모델이 나와서 작곡, 작사,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다고 했으면 과거의 내가 믿었을까? 어쩌면 아주 짧은 미래에는 “옛날에는 기사를 사람이 썼어?”, “그 땐 그림을 돈 받고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어?” 라고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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